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우주 탐사와 최초의 궤도 비행

by 풍요로운 돈나무 2024. 11. 22.

우주 정거장
우주 정거장

 

목차

 

● 우주 탐사

● 20세기 우주 탐사의 역사

● 최초의 궤도 비행

 

우주 탐사

 

우주 탐사란 우주 공간을 탐사하는 것을 말합니다. 실제적인 우주의 탐사는 유인 우주 비행과 무인 우주선으로 수행합니다. 그리고 우주에 있는 천체를 관찰하는 것을 천문학이라고 합니다. 20세기에 개발된 거대한 액체연료 로켓엔진이 실제적인 우주 탐사를 가능하게 했습니다.

 

우주 탐사는 냉전 같은 지정학적 경쟁의 대리전 성격을 띠기도 했습니다. 초기의 우주 탐사는 미국과 소비에트연방 간의 우주 경쟁에 의해 추진되었습니다. 지구 궤도에 쏘아 올린 최초의 인공위성인 스푸트니크 1호는 1957년 10월 4일 소비에트연방이 발사하였습니다. 1969년 7월 20일에 미국의 아폴로 11호가 인류 최초로 유인 달착륙에 성공한 것을 우주 탐사의 초기 경계로 간주됩니다. 처음에는 소비에트연방이 모든 면에서 주도하였습니다. 그 예로 1957년 최초로 생명체인 우주개 라이카를 지구 궤도에 쏘아 올린 것과 1961년에 최초의 유인 우주비행 보그토크 1호에 탑승한 유리 가가린의 우주비행, 1965년에 최초의 우주 유영 알렉세이 레오노프, 1966년에 지구 외의 천체인 달에 최초의 자동 착륙에 성공한 루나 9호, 1971년 최초로 발사한 우주 정거장 살류트 1호 등이 있습니다.

 

우주 탐사를 시작하게 된 지 약 20년 후, 1회용 우주 비행체는 우주왕복선 계획같이 재사용이 가능하게 바뀌었으며 우주 경쟁은 국제 우주 정거장 같은 협력으로 바뀌었습니다. 1990년대 이후 민간업체들이 우주여행의 판촉과 달의 민간 우주 탐사를 시작하였습니다. 2003년에는 중화인민공화국이 성공적으로 유인 우주 비행을 시작했고, 인도와 일본 또한 유인 우주 비행계획을 세웠습니다.

 

20세기 우주 탐사의 역사

 

우주로의 첫걸음은 제2차 세계대전 중 나치독일의 폰 브라운 등의 여러 과학자들이 개발한 탄도 비행체인 V2 로켓입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연합군은 독일 과학자들과 노획한 V2 로켓을 군사 및 인간 연구를 위해 이용하였습니다. 첫 번째 과학 우주 탐사는 1946년 5월 10일 미국에 의하여 수행되었던 우주 복사 실험이었습니다. 우주에서 찍은 지구의 첫 번째 사진은 초파리들을 올려 보낸 첫 번째 동물실험과 같은 년도인 1947년에 촬영되었습니다. 이 두 가지 실험은 미국과 그들의 독일인 고문들에 의해 발사한 V2에 의하여 수행되었습니다. 일련의 탄도 비행 실험은 우주에서 매우 짧은 시간 동안만 가능했습니다. 

 

페네뮌데 육군 연구 센터의 베르네 폰 브라운이 개발을 주도했으며 미국의 로버트 고다드가 개발한 액체 연료 로켓을 카피하는 것으로부터 개발이 시작되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난 후 고다드는 노획된 V2를 면밀히 조사한 끝에 자신의 기술을 훔쳤음을 깨달았으며 브라운 본인도 고다드의 로켓이 자신의 로켓 개발에 크게 기여했음을 인정했습니다. 브라운은 이것을 바탕으로 보다 발전시켜 V2를 만들었으며 V2는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우주에서 지구를 촬영한 로켓이 되었습니다. 이 로켓의 개발로 베르네 폰 브라운은 기술적인 면에서 적어도 약 25년 정도 시대를 앞서 나갔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 패전 이후 독일은 베르사유 조약을 통하여 전차나 군용기 개발에 강력한 제재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독일 육군은 민간에서 시험적으로 개발하고 있었던 로켓의 무기화 가능성에 주목하고 본격적인 로켓 개발에 나섰습니다. 그 당시엔 미사일에 대한 개념도 없었으며 베르사유 조약에도 명시되지 않아서 당시에 불리던 로켓으로 부르게 되었습니다.

 

1932년 육군 로켓연구소 소장 발터 도른베르거는 오베르트 박사의 제자인 19세의 폰 브라운을 영입하여 1933년부터 A1,2,3,4,5 로켓을 연속적으로 개발했으며 그중에 A4가 V2로 불리게 됩니다. V2에서 V는 보복을 뜻하는 Vergeltung를 의미합니다. 제공권을 상실한 상태에서 연합군에 보복무기의 성격을 띠고 있었기 때문에 히틀러가 부여했던 이름입니다.

 

v2의 비행과 유도원리는 수직과 수평방향의 균형을 잡아주는 자리로스코프를 설치해 스스로 평형을 유지할 수 있도록 했으며 초기형은 영국까지의 비행시간을 계산하여 컴퓨터에 입력하면 컴퓨터가 알아서 엔진을 멈추는 방식이었습니다. 후기 형부터는 지상에서 무선 명령을 통하여 유도했다고 합니다.

 

주 연료는 메탄올을 사용했는데 이것은 만성적인 석유부족에 시달리던 독일에게는 경유나 등유 같은 석유계 이외의 연료를 사용할 수 있었으며, 메탄올을 사용함으로써 따로 냉각재를 사용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몸체는 알루미늄으로 만들어져 발사 중량을 줄이도록 설계되었고, 로켓은 지속적으로 연료를 감소시키며 비행하기 때문에 중량은 계속 감소하고 속도도 더욱 빨라지게 되었습니다.

 

폰 브라운이 이끌었던 레드스톤 팀은 1958년 10월 창설된 NASA로 넘어갔습니다. 이렇게 해서 시작된 NASA의 마셜 우주비행 센터는 새턴 로켓의 부스터 개발에 아주 큰 역할을 했습니다. 

 

최초의 궤도 비행

 

최초로 성공한 궤도 비행은 1957년 10월 4일에 발사된 소련의 무인 인공위성인 스푸트니크 1호입니다. 스푸트니크란 러시아어로 "여행의 동반자"라는 뜻입니다.

 

보스토크 1호의 성공에 자극받은 미국은 우주 개 라이카를 태운 머큐리-레드스톤 3호를 발사해 탄도 비행에 성공했습니다.

모스크바 시내에서 길을 잃고 떠도는 강아지 라이카를 소련의 우주 과학 관련자가 발견해 데려와 다른 개 두 마리와 함께 우주 공간에서의 생물 생존 능력과 적응 여부를 조사하기 위한 각종 훈련과 테스트를 거쳐 우주로 보내졌습니다. 후에 라이카는 살아서 돌아오지 못했지만 이 실험을 통하여 지구 생명체가 지구 궤도 진입하는 과정과 무중력 상태에서 견딜 수 있음을 확인하였으며 과학자들에게 우주공간에서 생명체 반응에 대한 데이터를 제공하였습니다. 그러나 윤리적인 문제를 전혀 상관하지 않고 과학적 사실에만 주목했고 미국과 소련의 냉전과 우주 경쟁이라는 배경 아래 라이카의 죽음은 크게 주목받니 못했으나 나중에 동물학대, 실험 반대 단체와 마찰을 빚게 되었습니다.

 

1962년 2월 20일 미국 최초의 우주 비행사 존 글렌을 태운 머큐리-아틀라스 6호를 발사해 첫 유인 궤도 비행을 실시하였습니다.

 

최초의 여성 우주 비행사는 소련의 발렌티나 테레시코바였습니다. 그녀는 1963년 6월 보스토크 6호에 탑승하여 지구의 궤도를 48회 돌았습니다.

 

1960년대 달 탐험에 주력했던 미국과 소련의 우주 개발 계획은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 우주의 실생활 이용과 태양계 행성의 우주선에 의한 무인 탐사에 열을 올렸습니다. 1972년 아폴로 계획이 끝나면서 미국의 유인 달 탐험 계획은 일단 중지되었으며, 그 대신에 다수의 실용적인 성격을 지닌 인공위성, 예를 들어 기상, 통신, 자원탐사 등의 위성과 태양과 천체 관측용의 과학위성이 지구 궤도로 쏘아 올려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