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 에우독소스의 동심천구
● 아폴로니우스의 주전원
● 프톨레마이오스 체계
● 프톨레마이오스 이후
● 유럽에서의 수용과 전개
에우독소스의 동심천구
기원전 4세기경에 고대 그리스의 에우독소스는 우주의 모습이 지구를 중심으로 여러 층으로 겹친 천구가 감싸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가장 바깥쪽의 천구는 항성이 아로새겨진 항성구로, 하늘의 북극을 축으로 하여 하루에 걸쳐 동쪽에서 서쪽으로 회전하며 일주운동이 일어납니다.
태양이 포함된 천구는 항성구에 대하여 반대방향으로 1년에 걸쳐서 서쪽에서 동쪽으로 회전하며 연주운동이 일어납니다. 태양의 회전축은 항성구의 회전축에 대하여 기울어져있기 때문에 1년 동안 남중고도가 변하고 계절이 바뀌는 것에 대하여설명이 됩니다.
항성구와 태양 사이에 행성이 운행하는 천구를 두었습니다. 지구에서 볼 때 행성은 별자리 사이를 천천히 움직이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것은 항성구에 대한 행성구의 상대운동으로 설명되었지만 행성은 천구에서 속도를 바꾸거나 역행하는 한 시기동안 반대로 움직일 수 있습니다. 역행을 설명하기 위하여 행성 하나의 운행에 회전방향과 속도가 다른 여러 개의 천구가 고안되었습니다. 이 천구는 확실히 지구를 공통중심으로 하는 구형이기 때문에 지구에서 각 행성까지의 거리는 변하지 않습니다. 에우독소스의 동심천구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우주관에 포함되었습니다.
아폴로니우스의 주전원
기원전 3세기 무렵의 아폴로니우스와 기원전 2세기의 히파르코스는 행성이 단순하게 원운동을 하는 것이 아닌 원 위에 있는 작은 원 위를 움직인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작은 원을 주전원, 큰 원을 대원(Deferent)이라고 부릅니다. 이 두 가지 이상의 원운동이 합쳐져서 행성의 속도나 진행방향이 변화되는 것으로 보이며 이것은 행성의 접근에 의한 밝기의 변화, 순행과 역행의 속도의 차이를 대략 설명할 수 있습니다.
모든 행성이 동일한 평면에 있는 태양을 중심으로 하는 원궤도를 등속운동하고 있는 경우 지구에서 본 행성의 운동은 원궤도와 하나의 주전원만으로 기술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현실의 행성 운동은 그렇게 되어있지 않기에 행성의 운동을 천동설에서 정확하게 기술하기 위해서는 보다 복잡한 체계가 필요해집니다. 그리하여 히파르코스 이후 프톨레마이오스를 시작으로 다양한 천동설 모델이 제창되었고 결국 지동설의 코페르니쿠스, 케플러를 거쳐, 아이작 뉴턴의 만유인력의 법칙에 따른 우주 모델에까지 이르게 됩니다.
프톨레마이오스 체계
2세기에 알렉산드리아에서 활약한 프톨레마이오스는 주전원을 도입하면서 이심원과 동시심(Equant)을 도입해 체계화하였습니다. 항성구의 중심은 지구이지만 행성 대원의 중심은 이와는 다른 곳에 위치합니다. 대원의 중심이 항성구의 중심에서 벗어나있기 때문에 대원을 이심원이라고 합니다. 주전원의 중심은 이심원에서는 일정한 속도로 돌지 않지만 동시심에서 이것을 보면 일정한 회전속도로 움직입니다.
프톨레마이오스 체계는 지구에서 행성까지의 평균 거리에 준하는 이심원의 지름을 어떻게 잡는다고 하여도 보는 방향이 같다면 주전원을 만들 수 있습니다. 우선 각 행성의 주전원이 겹치는 것을 피하기 위하여 지구에서 달, 수성, 금성, 태양, 화성, 목성, 토성의 순서대로 둡니다. 그 바깥을 항성구가 둘러쌓고 있습니다. 이 우주관은 에우독소스, 아리스토텔레스의 동심천구의 확장된 형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프톨레마이오스 체계는 당시로서는 매우 뛰어난 것이었으며, 지구를 중심으로 가정하여 행성 및 태양의 운동을 설명하는데 더 이상의 것은 없을 정도였습니다. 만일 태양계의 행성 운동이 모두 타원이 아니라 원운동이었다면 프톨레마이오스 체계에서 행성의 운행을 거의 완벽하게 설명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후에 밝혀진 대로 사실상 행성은 태양을 초점 중의 하나로 두는 타원운동을 하고 있고 이후의 천동설은 타원운동을 원운동으로 설명하기 위한 방향으로 발전하였습니다.
프톨레마이오스 이후
프톨레마이오스 체계를 정리한 알마게스트는 중세 이슬람 세계를 거쳐 중세 유럽에 전달되기까지 약 1500년간 교과서적인 권위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한편 6세기에 인도의 아리아바타는 태양 중심의 지동설에 근거한 것으로 추측되는 몇 가지 계산을 남겼습니다. 인도에는 고대 그리스의 천문학이 들어와 있었고 그 영향이 있었던 것이라고 여겨집니다. 그의 저작은 8세기에 아랍어로, 13세기에는 라틴어로 번역되었습니다.
8세기에 아바스 왕조가 건설한 바그다드에는 헬레니즘 문명과 문화가 계승되어 인도의 문명과 만다는 상황이었으며, 이슬람 과학의 중심지가 되었습니다. 9세기 무렵 시리아 지방에서 활약한 알바타니(Al Battani)는 자세한 관측을 바탕으로 프톨레마이오스 체계를 계승하고 발전시켰습니다.
14세기 우마이야 왕조의 다마스쿠스에 있던 이븐 알 샤티르(Ibn Al Shatir)는 천동설의 입장에서 동시심을 제거해 코페르니쿠스와 같은 체계를 생각했습니다. 원운동에서 직선왕복운동을 일으키는 방법은 그에 앞서 13세기의 나시르 알 딘 알 투시(Nasir al-din al-Tusi)에 의해 제시되었습니다. 그들의 업적이 코페르니쿠스에게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도 지적되었지만, 그것을 입증하는 기록은 없습니다.
유럽에서의 수용과 전개
십자군 원정과 이베리아 반도에서의 레콘키스타, 지중해 무역 등은 유럽과 이슬람 세계의 접촉이 활발하게 하였습니다. 11~13세기에 걸쳐 이슬람 과학의 성과는 카스티야 왕국의 수도 톨레도, 시칠리아 왕국의 수도 팔레르모 등에서 활발히 연구되고 번역이 이루어져 12세기 르네상스로 이어졌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 등이 저술한 고대 그리스 문헌도 아랍어 번역을 중역한 형태로 유럽에 소개되었습니다. 지금까지의 로마 가톨릭교회의 신학은 아우구스티누스 등 라틴 교부에 의한 신플라톤주의를 기반으로 한 것이었습니다. 1210년 파리의 성직자 회의가 아리스토텔레스를 가르치는 것을 금지하는 등 새로 유입된 지식을 도입하는데 대하여 저항은 있었지만 13세기 후반에 활약한 알베르투스 마그누스와 토마스 아퀴나스 등에 의하여 결국에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은 스콜라 철학의 주류가 되었습니다.
프톨레마이오스 체계도 받아들여져, 13세기에 카스티야 왕국의 알폰소 10세에 의하여 편찬된 '알폰소 천문표'는 나중에 보정을 받으면서도 17세기까지 유럽에서 사용되었습니다. 15세기 독일에서 프톨레마이오스 등에 대한 연구를 했던 레기오몬타누스의 업적은 그의 사후 1496년에 '알마게스트 강요'로 발행되었고 코페르니쿠스의 연구에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이 무렵에는 '알마게스트'도 아랍어를 중역한 것이 아니라 그리스어 원전을 접할 수 있었습니다.
16세기 유럽에서는 니콜라우스 코페르니쿠스가 지동설을 주장했습니다.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은 태양을 중심으로 지구를 포함한 행성이 공전한다는 점에서 획기적이었으며, 동시심을 배제한 모든 천체의 운행을 크고 작은 등속원운동으로 기술했습니다. 그러나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도 원운동을 전제로 한다는 점에서 기존의 천동설과 동일했습니다. 실제로는 타원운동을 하는 행성의 운동을 원운동으로 설명하기 위하여 주전원이 필요했기 때문에 계산에 드는 수고는 프톨레마이오스의 천동설과 그다지 다르지 않았으며 예측 정확도도 크게 높지는 않았습니다. 지구의 위치가 이동한다면 그에 따라 별의 위치가 변한 것처럼 보이는 연주시차가 발생해야 하는데 당시 관측의 정밀도로는 그것을 관측할 수 없었던 것도 코페르니쿠스의 이론이 받아들여지지 않은 이유였습니다.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을 계승하여 에라스뮈스 라인홀드가 '프로이센 항성목록'을 작성하였지만 주전원의 수를 프톨레마이오스의 천동설에서보다 더 늘려서 계산을 복잡하게 했습니다.
코페르니쿠스의 이론의 영향을 받아 17세기의 튀코 브라헤는 지구를 중심으로 하면서도, 달과 지구를 제외한 모든 행성이 태양 주위를 도는 우주를 구상했습니다. 튀코의 태양계는 프톨레마이오스의 천동설의 발전형이라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프톨레마이오스 체계도 태양계라는 것이 전혀 존재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내행성인 수성과 금성의 이심원 회전각은 태양과 동일했지만, 외행성은 다르게 취급되었습니다. 내행성을 지구에서 보면 태양에서 어느 정도 이상은 떠나지 않고, 외행성은 태양의 반대쪽으로도 회전합니다.
프톨레마이오스 체계는 지구에서 달, 수성, 금성, 태양, 화성, 목성, 토성을 차례로 겹쳐놓았습니다. 튀코는 태양 주위를 수성과 금성이 회전하게 했습니다. 외행성의 경우에는 이심원과 주전원의 크기가 반전되어 지름이 커진 주전원끼리 원래의 프톨레마이오스 체계에서 이심원 끼리 겹쳐져있던 것처럼 겹쳐지게 되었습니다.
16세기에 니콜라우스 코페르니쿠스가 지동설을 주장한 뒤에도 천동설을 위협하는 사건은 계속되었습니다. 신성이 관측되어 별에서도 변화가 일어난다는 것이 발견되었는데 이것은 달보다 먼 거리에서는 어떠한 변화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우주관에서 큰 문제가 되었습니다. 또 튀코 브라헤가 혜성을 관측해 달보다 먼 곳에 있다는 것을 증명하며 격렬한 논쟁을 벌였습니다. 대부분 혜성을 기상현상으로 생각했기 때문이었습니다.